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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칼럼〕 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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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24 07:14
 
술은 단순히 알코올이 들어 있는 음료가 아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곡식을 저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오래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어떤 학자는“인류는 빵을 만들기 위해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라 술을 빚기 위해 농사를 시작하였다.”라고 했다. 그만큼 술은 인간의 삶과 역사를 함께 걸어온 동반자다.
 
 
우리나라에서도 술의 역사는 매우 깊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부여와 고구려 사람들이 술을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시대에는 궁중의 연회와 국가 제사에서 술이 빠지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집집마다 계절마다 다른 술을 빚었고, 막걸리·약주·청주 등 수많은 전통주가 탄생했다. 술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제례와 혼례, 회갑과 잔치, 농사일을 마친 뒤의 위로와 축복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문화였다.
 
술을 뜻하는 한자 주酒는 흥미로운 의미를 담고 있다. 왼쪽의 삼수변(氵)은 물을 뜻하고, 오른쪽의 유(酉)는 본래 술독이나 술을 발효시키는 그릇을 상징한다. 즉 술은 물에 시간과 정성을 더 하여 익혀 낸 생명의 음료라는 뜻을 품고 있다. 술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다림과 발효의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향기를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의 일생은 술과 같았다. 세월이라는 발효를 거쳐야 깊은 향기를 품게 되기 때문이다.
 
예부터 술과 관련된 고사성어도 수없이 많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이 술로 못을 만들고 고기를 숲처럼 쌓아 사치를 일삼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지나친 향락을 경계하는 의미가 되었다. 반면 곡차穀茶는 술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며, 불취무귀不醉無歸는“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벗들과 흥겨운 정을 표현한다. 또한, 배중사영杯中蛇影은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착각하여 병이 들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의심과 편견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를 일깨워 준다. 술은 이처럼 인간의 기쁨과 슬픔, 지혜와 어리석음을 함께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을 사랑한 인물도 많았다. 중국 당唐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술을 벗 삼아 수많은 명시를 남겼다. 그는“천하의 근심을 잊게 하는 것은 한 잔의 술이다.”라고 노래하며 술 속에서 자연과 우주를 만났다. 동진東晉 시대의 시인이자 은일隱逸 사상가 도연명陶淵明은 국화를 바라보며 술 한 잔으로 속세를 잊었다. 북송北宋 시대의 문학가이자 정치가 소동파蘇東坡 역시 술을 통해 인생의 풍류를 노래하였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가사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정철鄭澈은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술을 인생의 흥취로 승화시켰고, 조선 후기의 방랑 시인이며, 본명 김병연金炳淵인 김삿갓은 술과 함께 전국을 유람하며 해학과 풍자를 남겼다.
 
막걸리를 사랑한 시인 천상병千祥炳은 술에서 순수한 행복을 찾았고, 소설가 이외수는 술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길어 올렸다. 민중 시인 신경림申庚林은 막걸리 한 사발에서 서민들의 애환과 공동체의 정을 발견했다. 반면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고은高銀은 술의 유혹을 이겨 낸 뒤 더욱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 갔다. 이들에게 상상력의 불씨였고, 고독을 달래는 친구였다. 뿐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술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술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술은 언제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한 잔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두 잔은 정을 나누게 하지만, 절제를 잃은 술은 사람의 이성을 흐리게 한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술보다 중요한 것은 술을 마시는 사람의 품격이라고 가르쳤다. 술은 죄가 없다. 술을 다루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다. 같은 술이라도 효도주孝道酒가 되기도 하고, 우정주友情酒가 되기도 하며, 화해주和解酒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분노와 욕심이 담기면 독주가 되어 자신과 남을 해칠 수도 있었다.
 
술은 액체가 아니라 문화이고, 동시에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다. 술 한 잔에는 웃음이 담기고, 눈물이 담기고, 추억이 담겼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마셨고, 정을 나누었으며, 인생을 마셨다. 그래서 술은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지난 세월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향기가 된다. 이것이 수천 년 동안 술이 인간 곁을 떠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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